모 우유 브랜드가 ‘바나나 우유는 원래 하얗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죠. 사실 우리가 ‘흰 우유’라 부르는 기본 우유도 엄밀히 말하면 그저 하얗지 않습니다. 언뜻 보면 흰색이겠지만 여러 종류의 흰 우유를 모아 비교해 보면 그 색이 아주 미묘하게 달라요. 젖소의 먹이가 다르고 생산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유의 색깔을 하나로 뭉뚱그릴 수 없듯 우유의 맛도 얼마나 다채롭다고요. 어릴 적 의무적으로 마셨던 우유는 초고온에서 살균한 우유일 확률이 높은데요. 새로운 우유 맛을 느껴보고 싶다면 75℃ 이하의 온도에서 살균한 우유를 추천할게요. 구독자 멤버님에게 우유는 어떤 존재인가요? 친근하기만 했던 우유를 에피큐어와 함께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며 재해석해 보세요.
CHECK 1 열처리 방식
젖소로부터 얻은 원유에 열을 가해 살균해야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시는 우유가 됩니다. 이때 열처리 온도는 우유 맛에 큰 영향을 주죠. 온도가 낮을수록 산뜻하고 맑은 향미가 선명하고, 온도가 높을수록 맛은 더 고소하며 우유 특유의 비릿함이 진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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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균 온도와 방법이 우유의 맛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실제 우유를 고를 때 적용해 보세요. 우유 패키지 뒷면의 표시사항에는 우유의 맛을 좌우하는 살균 온도와 살균 방법이 상세하게 기재돼 있답니다.
CHECK 2 젖소 품종
만약 품종을 크게 고려하지 않고 손길 가는 대로 우유를 골랐다면 ‘홀스타인’ 소에게서 온 우유일 확률이 높습니다. 국내 우유 생산의 99% 이상을 차지하는 품종이기 때문이죠. 국내 젖소 품종 중 0.1%에 불과한 저지 품종은 낙농업이 발달한 유럽과 일본에서도 드물 정도로 희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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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CK 3 환경과 먹이
우유 이름에서 ‘동물복지’, ‘무항생제’, ‘유기농’ 등을 쉽게 보신 적 있을 거예요. 바로 젖소가 자라나는 환경과 사육 방식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들이죠. 특히 소가 자라는 지역은 우유의 성분과 맛을 바꿉니다. 예를 들면 서늘한 곳에서 자란 젖소의 우유는 단백질 함량이 높아 더 고소하답니다. 대관령, 홋카이도 등 유명 목장들이 고지대에 위치한 이유와도 맞닿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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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고 친근한 얼룩무늬 소
‘젖소’ 하면 대개는 검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얼룩무늬의 홀스타인(Holstein)을 떠올리기 마련이에요. 네덜란드에서 유래한 홀스타인은 전 세계적으로 우유를 얻기 위해 키우는 품종이죠. 특유의 무늬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얼룩소’라고도 불려요. 홀스타인 품종의 소 1마리는 하루 평균 28kg의 우유를 만드는데요. 다른 품종 대비 가장 많은 양으로, 낙농업이 빠르게 성장한 우리나라에서 홀스타인이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해요.
또렷한 맛의 저지 우유
최근 몇 년 새 눈에 띄기 시작한 젖소 품종으로는 저지(Jersey)가 있어요. 영국에서 유래한 저지는 아담한 덩치에 황갈색 털을 지녔죠. 아직 저지 우유를 시중에서 쉽게 만나기란 어렵고 인지도도 낮아요. 무엇보다 우유 생산량 자체가 아주 적은데요. 현재 국내에서 사육되는 저지 소는 510여 마리로 전체 국내 젖소 품종의 0.1%에 불과하죠.
저지 우유를 마셔본 사람들은 기분 좋은 묵직함과 부드러움에 감탄하곤 해요. 저지 우유가 진하게 느껴지는 건 홀스타인 우유보다 유지방과 단백질을 더 많이 함유한 덕분이죠. 또한, 우유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단백질 중에서 A2베타카제인은 일반우유에 주로 든 A1베타카제인보다 소화시키기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저지 품종은 홀스타인과 비교했을 때 A2베타카제인이 든 우유를 만들 수 있는 유전자를 보유한 비율이 더 높다고 해요.
저지 품종의 소 1마리가 만드는 우유는 하루 평균 16kg으로, 홀스타인의 3분의 2에 못 미쳐요. 하지만 유지방과 단백질을 더 많이 함유한 저지 우유로는 같은 양으로 더 많은 버터와 치즈를 만들 수 있어요. A2베타카제인 비율이 높은 까닭에 기능성 유제품으로 활용될 여지도 충분해요. 저지 우유를 다양한 유제품으로 만나볼 가능성은 열려있으니, 앞으로를 기대해 봐도 좋을 거예요.
우유를 구매하기 전 어느 목장에서 왔는지 살펴보는 분들 계실 거예요. 젖소가 자란 환경과 방식이 우유의 맛과 성분을 바꾸기 때문인데요. 국내 주요 목장과 지역들을 하나씩 뜯어보며 우유의 떼루아는 물론, 남다른 우유를 만드는 노하우까지 알아보세요.
강원도 횡성 | 범산목장
소가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춘 횡성은 국내 낙농업을 상징하는 지역이죠. 이곳에 자리한 범산목장은 국내 최초 유기가공식품 인증을 획득한 농가이자, 전국 1호 환경친화축산농장으로 지정된 농가예요. 최초의 길을 걸은 만큼 범산의 노하우는 남다릅니다. 화학 제초제, 농약 등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흙을 살리는 유기농법으로 사료를 거둬 젖소에게 급여해요. 그 후 퇴비를 발효시켜 다시 밭에 뿌리는 순환농법을 통해 목장의 지력을 높입니다.
충남 보령 | 개화목장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충남 보령에 자리한 개화목장. 서해의 바람이 목장이 자리한 언덕 위까지 불어와 더위에 취약한 젖소도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어요. 젖소에게 신선한 목초를 제공하기 위해 10만 평에 달하는 초지를 목장에서 직접 관리해요. ‘바르게 자란 소가 바른 우유를 만든다’는 개화목장의 신념과 철학을 우유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충남 천안 | 대진목장
천안에 위치한 대진목장. 젖소의 생육 환경에 남다른 정성을 쏟는 동물복지 인증 목장입니다. 사육두수를 줄여 우유 생산량을 포기할지라도, 젖소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한 마리당 33㎡ 이상의 충분한 공간을 마련했죠. 풀, 건초, 짚처럼 섬유질이 많은 조사료를 먹여 소의 건강을 신경 쓰고, 축사 내 갖추어 둔 운동장의 톱밥을 수시로 갈아주며 위생을 철저히 관리해요. 대진목장의 동물복지 우유가 비릿함 없이 깔끔한 맛을 자랑하는 이유랍니다.
전북 고창 | 상하목장
상하목장이 위치한 전북 고창. 지대는 높지만 경사도는 완만한 ‘구릉지형’이 돋보이는 지역이지요. 그 덕에 몸이 무거운 젖소들도 언덕을 편안히 드나들 수 있고요. 서해에서 불어오는 해풍은 더위에 취약한 젖소들의 땀을 상쾌하게 식혀줍니다. 영양이 풍부한 고창의 황토질은 풀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고 상하목장 젖소들의 자연 먹이가 되어 줍니다.
제주도 | 제주목장
섬 자체를 ‘거대한 정수기’라고 부를 정도로 청정한 제주. 동쪽 마을 조천읍에 위치한 제주목장은 화산송이와 현무암으로 불순물이 걸러진 천연 암반수를 젖소에게 제공합니다. 오름이 위치한 선선한 고지대에서 농약 없이 목초를 재배하고, 목초와 사료 비율을 6:4로 맞춰 젖소에게 배급하죠. 그 덕에 영양은 물론, 맛의 밸런스가 훌륭한 우유를 선보이고 있어요.